센트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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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1년 정도 회사를 다녔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해봤던 것, 배웠던 것, 좋았던 것, 나빴던 것 등을 정리해볼까 한다. 지금 2018년인데 이제와서 회고를 한다고?! 싶은게 함정이지만… 예전에 써놓고 공개하지 않은 원고를 다듬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처음 퇴사했을 때 생각과 달라진 부분도 생겨서 (석사 과정 첫 방학을 맞이하며)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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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에 첫 면접을 봤다. 면접 장소는 회사 근처 폴바셋, 면접은 CTO (과 동기)와 공동 대표. 면접은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 괜찮은 분위기로 끝난 면접. 이후에 모든 센트비 사원들과 같이 면접하는 자리를 잡게 됐고, 이 무렵 센트비는 Co-founder 3명, Designer 1명, CMO 1명, CS 1명으로 총 6명의 팀이었다. 이후 1월 18일에 바로 합류하게 된다.

들어와서는 Rails 기반에 angular.js를 섞어쓰는 코드를 순수 angular.js로 바꾸고, 이 과정 중에 만들어진 모듈들을 기반으로 Ionic 안드로이드 MVP앱을 출시한다. 약 2주 남짓한 개발기간에 앱을 만들어서 송금신청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었다. CSS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딱히 없어서 CSS 코딩까지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엄청난 생산성에 놀랐던 기억.

이후에는 angular.js에 Redux를 붙이는 포팅을 하다가, 한계를 깨닫고 React로 넘어간다. 이쯔음해서 프론트엔드와 앱까지 나 한 사람의 생산성으로는 쫓아가기 힘든 성장을 했다. React로 넘어가면서 그 급격한 러닝커브에 모든 병목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결국, 주말에도 야근을 하면서 겨우겨우 완성해낸다.

React로 넘어가고난 직후 후임 개발자와 웹 퍼블리셔를 구했고, 그들과 협업을 시작하고 이런저런 컨벤션과 시행착오를 겪다가 개인적인 사정, 그리고 학사병특의 좌절 등의 이유로 2월 말에 회사를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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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센트비 입사는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학사병특을 한다는 조건으로 입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복학하게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지분을 받은 것도 아니고, 첫 세 달은 투자 못 받은 스타트업의 관례가 다 그렇듯,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을 받으며 정직원 처럼 근무했다. 13개월의 근무기간 치고는 4대 보험에 가입한 기간이 10개월이니 1년을 다 채우지 못해서 퇴직금조차 못 받을 뻔 했다. 겉으로 보이는 아웃풋으로 내가 얻어간 것은 금전적으로나, 국방적(?)으로나 대실패다. 병특을 하지 못했을 시에 보상같은걸 걸었어야 했나.

2월 말까지 근무한 것도 너무 회사의 편의를 봐준 것 같다. 학기가 시작한 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나 한 사람 나간다고 망할 회사가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인수인계를 해줬어야 했나. 일 주일만 더 빠르게 그만두는 게 좋았을 것 같다. 덕분에 회사를 그만두기는 한 건지 복학을 하고 나서도 퇴사한 느낌이 없었고, 퇴직금이 들어올 때가 되어서야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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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긴가민가한 점을 보자. 내가 내 스스로 사용할 기술스택을 정하는 결정권이 굉장히 높았다는 것이 좋았다. 팀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데에 저항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더 장려하는 분위기도 나와 꽤 맞았다. 거꾸로 말하면, 사수없는 신입의 고군분투였다고 볼 수도 있다.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시행착오를 부족한 경험으로 결정해야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처음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의 정신승리 끝에 오히려 그 당시에 어중띤 사수가 없었기에 더 좋았다는 것을 “일부분 “인정하기로 했다. 그 당시 프론트엔드는, angular.js에서 Angular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고, React라는 것이 조금씩 보급되면서, Vue라는 것도 있다더라였다. 거기에 React Native와 Ionic을 필두로 웹 기술로 앱을 개발하는 니즈도 있었다. 전문가가 있는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라기 보다는 웹 퍼블리셔인 사수가 있었다면 상황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단언컨데, 그 당시 회사가 원하던 프론트엔드 스택은 국내에서 전문가를 찾기 힘들었다. React로 포팅을 끝낸 뒤에 후임 개발자를 찾을 때에도 그 최.신. 기술인 angular.js만 해본 사람이 수두룩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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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의 흐름상 좋았던 점이다. 물론 좋았던 점은 단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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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훼이크고ㅎㅎ

팀원 전체 면접에서 느꼈다. 사업 아이템과 상관없이 이 사람들과 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실패할 때 하더라도 함께 도전해보고 싶었다.면접 후에 순댓국집에 가서 소주 한 잔 하면서 그 생각은 더 강해졌다. 진짜 괜찮은 사람들이구나.

워라밸과 리모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집에서 근무하다가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타고 들어와서  일하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를 굳게 신뢰했다. 보이지 않아도 당연히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개발이 늦어진다고 해도 이해해주는 C-level Executive도 감동이었다. 회사도 급격하게 성장했다. 첫 스타트업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한다는 것은 꽤 마약적인 경험이다.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100명의 고객에게 (링크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는) 클로즈베타 앱 링크를 배포했는데 2주 뒤에 다운로드 수가 500이 넘었다든가, 매출액이 2배씩 증가한다든가, 매경 핀테크어워드 1위를 차지했다든가.

내가 만나지 못한 유형의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입사 후 6개월 정도는 스타트업 뽕에 만취한 상태였다. 가끔이어서 감질났던 회식도 할 때마다 재미있었다. 힘겹게 쉬즈곤을 부르는 분석팀 형의 간주시간에 “하~ 사회생할하기 겁나 힘드네~” 하는 위트가 있었다. 해외송금업이다 보니 CS를 담당하는 외국인 직원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재미도 있었다. 나는 술 취했을 때 영어를 무척 잘하니까 항상 취해있으라는 소리도 들었다. 비-야근을 장려하는 문화도 좋았다. 종로 그랑서울, 여의도 63빌딩과 같이 좋은 건물들을 반바지에 쪼리신고 출퇴근하는 일탈도 좋았다. 만약 센트비라는 사업아이템이 망하더라도, 이 멤버로 피봇팅해서 다른 아이템으로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다.옛 생각에 약간 눈물이 고인다.  병특을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센트비는 좋은 직장이었다. 군대만 아니었으면 휴학을 더 쓰고서라도 다니고 싶었던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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